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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군대 이야기

군대 이야기 11. 우주에서 본 열쇠

by 오후식 2026. 3. 27.

 
 
 
 
 
내가 만든 걸 우주에서 볼 수 있다고 했을 때 그 기분은 참 묘했다.
 
 
GP에는 가끔 장성급 군간부가 방문한다. 어느 날은 군단장이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모든 군부대가 그렇겠지만 GP도 여지없이 장성이 방문한다고 하면 대청소를 한다. 구석구석 쓸고 닦고 치약을 짜서 바닥과 화장실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모포와 군복에 각을 잡는다. 하지만 이건 어느 부대에서 다 한다. 그러면 다른 부대와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당시 우리 부대의 GP장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우리 군부대의 상징인 열쇠 마크를 GP 마당에 그려 넣는 것이었다. 
 
부GP장은 마당의 흙바닥에 군화의 뒤축으로 커다란 열쇠 마크를 그렸고 우리는 돌을 주웠다. 돌을 줍는 데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 날은 돌에 빨간 페인트를 바른 뒤 마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흙바닥에 희미하게 새겨진 열쇠마크 위로 빨간 돌을 차곡차곡 쌓아 열쇠를 그려나갔다.
 
군단장이 방문하는 날 GP장은 거대한 열쇠마크 옆에서 군단장에게 힘차게 경례를 올렸다. 군단장은 별말 없이 지나친 뒤 GP를 돌아봤고 경계 근무인원을 제외한 GP원들을 생활관으로 불러 훈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고생이 많다는 말과 함께 피자에땅 1+1 피자를 우리들에게 남기고 떠났다. 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빨간돌 열쇠마크는 군단장이 떠난 뒤에도 한참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아마 그해 겨울 눈이 내린 날 제설 작업을 했을 때 눈과 함께 쓸려 없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구글어스에서 본 만리장성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노력해서 만든 빨간 돌 열쇠마크가 인정받지 못한 거 같아 한동안 아쉬워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상황병 한 명이 구글 어스에서 우리가 만든 빨간 돌 열쇠마크가 보인다는 걸 발견했다. 휴식 시간에 내려가 보니 진짜 보였다. 스크롤을 엄청 당기고 보니 빨간색 원 안에 열쇠 모양 비스무리한 빨간색의 무언가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 만리장성은 인공위성에서 보일 정도로 크다라는 말을 들었었기에 우주에서 보이려면 만리장성 정도는 돼야 보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름 5~10m 정도의 열쇠마크도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군단장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이 산골짜기의 열쇠마크가 우주에서 보인다니, 그리고 그 열쇠마크를 만든 당사자들이 우주에서 찍은 그 열쇠의 사진을 보면서 놀라고 감탄하는 게 묘했다. 앞으로 이런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걸 우주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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