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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군대 이야기

군대 이야기 8. GP의 간식

by 오후식 2026. 3. 17.

 

 




일주일에 한 번씩 GP로 보급품이 전달된다. 보급품은 군인에게 제공되는 모든 물건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인데,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오는 보급품은 주로 식자재이다. GP에서 지내는 부대원이 일주일 동안 먹을 급식 식자재랑 부식이라고 해서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라면, 초코바, 우유 같은 것들이 올라온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식은 간편식 떡볶이(이름은 2PM이었다)랑 쇠고기면 그리고 우유였다. 일주일에 흰 우유가 인당 두 개씩 보급됐는데, GP에 올라올 때 챙겨온 초코맛 제티를 타 먹는 게 즐거움 중 하나였다. 제티가 다 떨어진 날에는 맥심 커피믹스를 타 먹기도 했다.
 
흰 우유를 특별한 부식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도 많았지만 특별한 부식으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보급품이 전달되는 날 낮 12시까지 소진되지 않은 우유는 소유권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소유권이 박탈된 우유는 누구나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소유권이 박탈되더라도 상병장급의 우유는 후임병이 건들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내가 이등병일 때 다른 후임병이 우유를 먹어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다행히 나는 그 불문율 만큼은 느낌으로 깨우치고 있었다.
 
주로 소유권이 발탁된 우유는 전날 새벽에 근무하고 오후까지 잠을 자던 사람들의 것이었다. 남의 우유를 먹는 게 좀 찜찜하긴 했지만 그래도 룰은 룰이니까 낮 12시 즈음에 냉장고 문을 열고 잘 꺼내 먹었었다.
 
부식이 다 떨어진 날에는 맥심 커피를 잘 부셔서 조금씩 입에 털어 넣기도 했었다. 이건 좀 호불호가 갈렸는데 나는 좋아하는 쪽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비빔면이나 짜장라면을 생라면으로 먹기도 했다. 라면사리를 한 입 크기로 부순 다음에 사리 위에 소스를 조금 짜서 올려 먹는 식이었다. 이것도 좀 호불호가 갈렸는데 비빔면은 좋아했지만 짜장라면은 좋아할 수 없었다.
 
군용 보급품 뿐만 아니라 개인 간식이 전달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이나 여자친구가 간식 상자를 주둔지 주소로 보내면 보급품이 전달되는 날 간식상자도 같이 올라오는 식이었다. 나는 군생활 하는 동안 총 두 번 간식 상자를 받아봤다. 한 번은 나와 진우의 중학교 친구 현수가 보냈었다. 현수는 당시 필리핀에서 유학중이었는데 해외 배송을 거쳐 온 거라 상자에 여러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상자에는 7D 망고가 엄청 담겨 있었고 편지도 한 통 담겨 있었다.
 
다른 간식 상자는 천주교 단체에서 보낸 것이었다. 어렸을 적 천주교 세례도 받았고 부모님 두 분 다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엄마가 성당에서 뭘 신청했나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간식 보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는데 엄마는 그런 거 신청한 적이 없다고 해서 꽤 당황했다. 도대체 DMZ 안 외딴 성에 천주교 신자가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걸 천주교 단체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당시에는 이렇게 믿고 넘어갔다. 성당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은 남자 아이의 리스트를 관리하고 그 아이가 입대를 하면 이렇게 한 번씩 간식상자를 부대로 배송해준다. 이렇게 생각하니 천주교라는 종교가 너무 따듯하게 느껴졌다. 근데 전역을 하고나서 누나가 성당을 통해 간식상자를 보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친누나가 간식을 보낸 것도 따듯한 사실이긴 하지만 상상이 깨진 게 더 차갑게 느껴졌다.
 
보급품이 올라오는 날에는 담배도 올라온다. 담배는 보급품은 아니고 군인 개인이 주문한 물품이다. 보급품이 올라올 때 주둔지에 있는 병사 몇 명이 올라오는데 담배는 그들의 등짐 주머니에 담겨 올라온다. GP에 있는 사람 중에 담배가 다 떨어진 사람이 주둔지에 연락해서 보급 때 올라오는 사람을 알아내고 그 사람한테 부탁해서 어떤 담배를 몇 보루 주문하는 식이다. 담배가 올라오는 과정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했지만 이건 꽤나 어려운 작업이다. 일단 상황실에 들어가서 전화기를 쓸 수 있어야 하고, 랜덤 계급의 주둔지 행정병과 연락해서 보급 때 올라오는 병사가 누군지 알아내야 하고 마지막으로 그 병사한테 담배를 부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짬이 찰대로 차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보통 흡연자는 GP에 올라가기 전 날 PX에서 담배를 잔뜩 사서 올라간다. 담배의 공급은 이렇게 어려운데 담배의 수요는 꽤 있었기 때문에 담배는 꽤 인기가 많은 부식이었다. 흡연자들은 근무 전후나 작전 전후로 담배를 폈는데 이때 담배를 갖고 있는 후임병은 선임병 뿐만 아니라 간부에게도 이쁨을 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담배가 오가고 같이 담배를 피는 그 순간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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