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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군대 이야기

군대 이야기 4. 자대배치

by 오후식 2026. 3. 11.

 
 

 


수색중대로 자대배치를 받은 나는 한 군용트럭을 타고 자대로 향했다. 트럭 안에는 나와 나의 동반입대 진우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다. 그 두 명도 동반입대였고 우리와 달리 그 둘은 이곳에 자원했다고 했다. 이유는 수색중대에 가면 휴가를 길게 여러 번 나갈 수 있는 게 좋아서였다. 당시 나는 휴가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휴가 보다는 부대 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넷을 싣은 군용트럭은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에서 검문을 받고 민간인 통제 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수색중대의 주둔지는 민간인 통제 구역 안에 있었다. 민통선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둔지가 보였고 주둔지 출입문에는 '아들아 믿는다'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함의적으로 꽤 잘 지은 슬로건이라고 생각했다. 주둔지 건물은 오래된 듯 했지만 관리를 잘했는지 깔끔한 느낌이었다. 건물 안 행정실에서 중대장을 만나 자대배치 신고를 올리고 소대장과 함께 내무반을 구경하러 갔다. 
 
소대원들은 공용화기 사격술을 익히고 있었다. 실탄이 없는 상태에서 탄약 넣는 시늉을 하고 장전하고 입으로 발사소리를 냈다. 우리가 내무반에 들어왔음에도 그 공용화기 사격술 연습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는데 뭔가 낯설었다. 분명히 우리가 보일텐데 왜 이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을까. 내무반 구석에 더플백을 풀고 다시 행정실로 와서 소대장과 면담을 했다. 면담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고 대학교 전공을 물어봤던 기억은 있다.

면담이 끝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니 공용화기는 치워져 있고 계급이 높아보이는 사람들은 티비 앞에, 낮은 사람들은 구석에 모여 뭔가를 외우고 있었다. 일병 하나가 우리한테 와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관등성명과 압존법에 대해 알려줬다. 그리고 수색중대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수색중대는 주둔지 생활 몇 개월 그리고 GP 생활 몇 개월을 반복한다. GP는 Guard Post의 약자로 DMZ 안에 있는 최전방 요새이다. 이런 생활을 네 다섯 번 정도 반복하면 전역을 하게 된다. 당시 군복무 기간은 21개월이었고 훈련병 신분으로 2개월 정도를 보냈었다.

수색중대 안에는 네 개의 소대가 있고 두 개의 GP를 담당했다. 하나의 GP를 두 개의 소대가 돌아가며 맡는식이다. 소대는 여러 개의 분대로 구성된다. GP라는 요새 밖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작전 분대가 있고, GP 안에서 공용화기를 다루는 공용화기 분대가 있다. 마지막으로 GP안 상황실에서 상급, 인근 부대와 현재 상황을 주고 받는 본부분대가 있다.

이외에도 GP에서 사용하는 무기의 제원, 정전규칙등 암기하고 있어어 하는 몇 가지 내용이 담긴 서류도 건네받았다.

설명을 다 듣고 나니 개인정비 시간이 됐다. 저녁을 먹고 내무반에서 짐정리를 하고 있는데 상병들이 PX에 가자고 했다. 이것저것 골라서 테이블에 펼쳐놓고 과자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과자라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특히 갸또라는 과자가 맛있었다. 하지만 너무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많이 남겼는데 나중에야 군대에서 선임이 사주는 건 다 먹는 게 불문율이라는 걸 알았다. 저녁점호시간에는 자대배치 온 우리를 웃기게 하려고 선임병들이 장난을 많이 쳤는데 웃음을 참던 다른 동기들과 달리 나는 그냥 웃었다. 이것도 웃음을 참는 게 불문율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난 아이스브레이킹인줄 알았는데.

스무살때 나는 과외 알바를 했다. 다른 알바와 달리 과외는 상당히 갑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알바였다. 학생 본인이 자발적으로 듣는 수업이다 보니 교권이 무시당할 것도 없었고 학부모의 경우도 아이 성적이 하락하면 선생인 나 보다는 자식을 탓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별 눈치 볼 일 없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군대에 들어왔다. 신생학과로 대학교에 입학한 탓에 학과에 군대를 다녀온 선배가 없다보니 군대 얘기를 건너들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불문율을 몰랐다고 말하는 건 핑계 같기도 하다. 예전보다 눈치를 좀 더 보고 살기는 해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전반적인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사회의 통념을 쉽게 깨닫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사회의 통념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일을 저지르고 나서야 그날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뒤늦게 깨닫곤 한다. 이런 성향 때문에 모든 일이 그렇듯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별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주변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거다. 성향은 쉽게 고칠 수 없기에 난 내가 그 상처를 빨리 알아채고 주변에게 제대로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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