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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군대 이야기

군대 이야기 3. 신병교육대

by 오후식 2026. 3. 10.

 
 
 

 


신병교육대에서는 한달 정도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306보충대에서 신병교육대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내린 뒤
연병장에서 오와 열을 맞추고 몇번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한 다음 내무반으로 이동했다.
 
내무반 하나에는 40명 정도의 훈련병이 생활했던 걸로 기억한다.
신병교육대는 306 보충대와는 달리 꽤 체계적이었다.
화장실이나 내무반 밖으로 이동할 때는 내무반 각 옆자리 두 명과 전우조를 이룬 뒤에 나가도록 했고
한달 동안 받을 교육 일정도 미리 짜여져 있었다.
 
내무반 사람들 끼리는 한달 동안 같이 교육을 듣고 잠도 자고 밥도 먹다보니 얘기 할 일이 많았고
꽤 친해지기도 했다.
 
나는 대학교 1학년을 막 마치고 입대한 터라 21살이었지만,
내무반에는 20대 후반의 형들도 많았다.
배경도 다양했다. 호주나 독일에서 유학하다가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 강사 일을 하다가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패션 사업을 하다가 잠시 접고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런 개인적인 얘기를 들을 때면 꽤 놀라곤 했었는데,
아마 머리도 다 밀어서 비슷하고 옷도 똑같이 군복을 입다 보니
얘기하기 전까지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도 나랑 비슷하게 살아왔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한달 동안 여러 훈련을 받았는데, 그중 어렵다고 느꼈던 훈련은 행군, 사격, 화생방 이 세 개였던 거 같다.
행군은 다리가 아픈 것보다 군장이 어깨를 짓눌러서 팔에 피가 안통하는 게 힘들었고,
사격은 개머리판에 놓는 뺨의 위치에 따라 가늠자가 다르게 보이는 걸 신경쓰느라 표적을 거의 맞추지 못했다.
사격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꼈던 다른 하나는 사격장에서 대기하는 동안 코로 들어오는 화약 냄새였다.
화약 냄새와 함께 사격장 통제 관리자(중위 ~ 대위 정도의 간부)가 훈련병한테 소리지는 걸 들으면 긴장이 멈추지 않았다.
화약 냄새에 대한 긴장감은 전역하기 전까지도 사라지지 않았고,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사격장에서 극도로 긴장하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본 뒤 귀신처럼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화생방은 그냥 지옥이었다. 폐 안에 후추를 한통 털어넣은 느낌이랄까. 
 
신병교육대에서는 주말마다 종교활동이 있었는데 불교, 천주교, 기독교 세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해서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성당을 갔었다.
기독교와 불교에 비해 천주교를 종교활동으로 참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독교에서는 다 같이 찬송가를 부르곤 했다는데, 천주교에서는 조용히 신부님 말씀을 듣고 초코파이를 먹고 오는 게 전부였다.
한 가지 특별한 게 있었다면 천주교 군종병이 금주에 방영된 무한도전이나 최신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한도전이 재밌고 최신 뮤직비디오의 영상이 멋지고 노래가 좋아서 특별했던 것은 아니고
훈련병을 위해 매주 영상 자료를 준비하는 사람이 신병교육대에 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신병교육대의 마지막 주에는 자대배치를 위한 면접시간이 있었다.
모든 부대에서 면접관이 온 것은 아니고 수색대대와 수색중대 그리고 다른 일부 부대에서 사람을 뽑기 위해 찾아왔다.
면접이 의무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 나랑 진우는 그날 수색중대 면접을 보게됐다.
면접관은 수색중대가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휴가는 어떻고 너네는 동반입대니까 끈끈하게 생활하기 좋다고 여러 얘기를 해주었다.
면접관이 지원해보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최전방이니까 많이 춥지 않냐고, 나는 수족냉증이 있어서 어려울 거 같다고 대답했다.
면접관은 웃으면서 "형이 장갑 두꺼운 거 사줄게. 너네 둘 가는 거다 알았지?" 하고 노트에 우리 둘의 이름을 써버렸다.
 
그렇게 나는 수색중대로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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