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호쿠토 열차를 타고 홋카이도 남부에 위치한 하코다테에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여행할 당시에 나온 코난 극장판이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영화 포스터가 곳곳에 보였습니다.
하코다테역에 도착할 때 호쿠토 열차의 안내 방송 목소리도 코난이었습니다. 코난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긴 시간 기차를 타고 꽤나 먼 곳에 왔는데도 하코다테는 노보리베츠보다 낯선 느낌이 덜했습니다.
하코다테 JR역사 안에 있는 여행 정보 센터에서 하코다테 트램 1일권을 구매했습니다.
하코다테는 대중교통으로 버스와 트램이 있습니다. 트램이 주요 여행지를 거의 다 지나서 트램 1일권을 구매했습니다. 트램은 뒷문으로 타서 트램 기사님이 있는 앞문으로 내리는데, 트램 1일권을 구매한 경우 기사님에게 표를 보여주면서 내리면 됩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네모리 아카렌가 창고를 찾았습니다.
( 혹시 하코다테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께서는 이 사진보고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아카렌가 창고는 사진보다 훨씬 이쁩니다. 날이 흐리기도 했고, 제가 필름 카메라로 열심히 찍고, 휴대폰으로는 대충 찍었는데 필름 카메라가 고장나서 인화를 못했습니다. )
바닷가 쪽에 위치한 아카렌가 창고는 과거에 영업창고로 쓰였다가, 지금은 복합시설이 들어선 관광지입니다. 줄지어 서 있는 빨간색 벽돌 창고 안에는 레스토랑, 카페, 잡화, 슈퍼마켓, 옷, 잡화 가게 등 여러 상점들이 있습니다. 여행하다가 식사하러 들려도 좋고 기념품을 사러 들려도 좋습니다.
아카렌가 창고 안에서 저는 유리 공예품 구경하는 게 가장 재밌었습니다. 특히 식탁등 보는 게 좋았습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소품으로 자주 등장한 식탁등을 본 뒤로 저런 조그만 전등이 갖고 싶어졌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식탁등을 놓기도 애매하기도 하고 선뜻 사기에 가격도 조금 비싸서 구매하지는 않았습니다.
여행 오기 전에 하코다테 지역에만 있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럭키 피에로'를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가게 문앞에 섰지만 막상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랑 와서 요란한 느낌의 가게에 들어가기가 꺼려졌던 것 같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제 안에 삐에로 공포증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신 날이 좀 쌀쌀해서 아카렌가 창고 주변에 있는 '아지사이 라멘'에서 라멘을 먹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간단하게 마치고 '고료카쿠 코엔'에 들렸습니다. 고료카쿠는 에도 시대에 지어진 별모양의 성곽을 뜻하고 지금은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코엔이라는 말이 뒤에 붙었습니다. 공원 옆에 고료카쿠 타워가 있고 타워 상단에서 별모양의 성곽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는데 비용이 인당 만원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이날 날이 흐려서 전망대는 가지 않고 타워 1층과 고료카쿠 공원만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성곽 주변은 물길이 둘러 싸고 있습니다. 저희는 다리를 통해 물길을 건너 공원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원 안쪽에는 잔디와 소나무가 잘 정돈되어 있어 조경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습니다. 봄이 끝나가는 5월 말이라 꽃이 많지 않았지만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 좋았습니다.
고료카쿠 공원을 둘러본 뒤 트램을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이 가득한 하코다테 모토마치는 여행 마지막 날까지 자주 거닐었습니다. 모토마치는 이른 아침, 낮, 저녁, 밤 언제 가도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모토마치에서 짧게 산책을 하고 케이블 카를 타고 하코다테 산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처음에 하코다테는 화산이 분출되면서 만들어진 섬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코다테 섬과 반도 사이에 모래가 쌓여 지금처럼 반도와 섬이 하나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도와 섬이 이어진 부분이 사진처럼 잘록한 모양을 갖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코다테의 양쪽으로 해안이 길게 뻗어져 있고, 그 안으로 조그만 건물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습니다. 긴 시간이 흘러 지금의 지형이 완성되었겠지만 섬과 반도가 연결되는 걸 지켜본 현지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전망대는 실내와 실외로 구분됩니다. 제가 갔던 5월 말은 야외에 계속 있기 좀 추웠습니다. 만약에 야외에서 오랫동안 있을 계획이라면 외투 하나는 챙겨가는 것이 좋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실외 전망대에는 일본인, 외국인 관광객들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손 꼭 붙잡은 연인도 있고, 오랜 친구들과 여행 와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사람도 있고, 여행을 통해 처음 친해진 사람들과 서로 사진 찍어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가족이랑 온 저도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코다테 전망대에서 내려와 바(bar)에서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술을 잘 못해서 술집을 가는 게 맞나 고민했지만, 숙소 들어가기 전 칵테일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분위기 있는 술집에서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주문한 칵테일 이름이 기억이 안 납니다. 아마 누나는 술을 안마신다고 해서 라즈베리 쥬스를 주문했던 것 같고,
저는 애플이 들어간 메뉴를 주문했고, 어머니는 시트러스 계열의 칵테일을 주문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 맛있었습니다.
칵테일을 처음 마셔봤던 어머니는 칵테일이 도수가 높은 술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마신 나머지 잠시 취해 계셨습니다.
엔초비 피자랑 양파 가니쉬를 곁들인 잠봉, 파르페도 같이 주문했습니다. 안주는 술이랑 곁들이기 좋게 적당히 짭짤한 간으로 다 맛있었습니다. 파르페는 여행 가기 전에 가게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리 예약주문을 했습니다. 계절 식재료를 고려해서 파르페 구성이 주기적으로 바뀝니다. 맛도 맛인데, 파르페를 이쁘게 담아주셔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바는 가족들이랑 정말 잘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술을 곁들이면서 여행을 되돌아보고 여행의 감사함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행 뿐만 아니라 그동안 잠시 잊고 살았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도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언제 나는 기분이 좋았고, 섭섭했고, 미안했다.'와 같은 이야기. 저는 이날 오랜만에 가족들의 기분을 말로 이해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가족들의 표정을 보고 '아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다시 말로 접하니 차분해졌습니다.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는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에 대해 소개합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입니다. 가족이 모여 사는 집이라는 공간에는 이런 상처가 담긴 물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물건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사실 상처를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라 고통입니다. 그리고 집에 사는 이상 우리는 그 물건을 매일 마주하게 됩니다. 가족들과 찾은 이 '바'라는 공간을 통해 저희 가족은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확실히 달아난 것 같았습니다. 원래 마시지 않던 술과 안주를 마셨고, 잘 담긴 파르페, 주변 공기를 채운 일본어, 복장과 행동에서 모두 격식이 느껴지는 바텐더, 우리 집과는 다른 어두운 조명 아래의 인테리어 등. 그래서 지난 가족들의 이야기를 좀 더 여유롭게 꺼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밤 늦게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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