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하코다테 모토마치를 거닐다가 늦게 잠이 들었지만 일찍 일어났습니다.
여행지의 이른 아침은 출근하는 직장인이나 등교하는 학생들 정도만 있어서 거리가 한적합니다.
저는 이 한적함 때문에 여행 와서 아침 일찍 일어나 걷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피곤해도 일찍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그냥 거리를 걷는 것은 아니고 특별히 갈 데가 있기도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하코다테 산 뒷편에 있는 다치마치 해안 절벽을 가기로 했습니다.
다치마치 해안 절벽으로 가는 길에 하코다테 공원을 지났습니다.
공원에는 이른 시간부터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보였습니다.
산책을 하던 한 어르신은 강아지를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강아지한테 간식을 줘 보라며 간식을 하나 꺼내 주셨습니다.
주인 없이 혼자 산책 나온 고양이도 보였습니다.
흰색 타일의 건물과 검은 고양이가 잘 어울립니다.
도로에는 차가 없고, 인도에도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없고, 서울에서 보기 힘든 전신주를 따라 검은 전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평소에 가득했던 것들이 비워져 있는 이 기분 때문에 여행지의 이른 아침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열지 않은 소품 가게의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봅니다.
햇빛에 비추어진 알록달록한 소품을 보니 소품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품도 다른 생명처럼 낮과 밤을 보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야치가시라 트램 정류장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다치마치 해안 절벽 (Tachimachi Cape)' 표지판이 보입니다.
표지판 위에 '타쿠보쿠이시카와 가족의 묘지 (Grave of Takubokuishikawa's family)' 표지판이 같이 보입니다.
표지판대로 타치마치 해안절벽으로 가는 길에는 묘지가 있습니다.
밤에 묘지를 걸으면 조금 무서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침에는 오히려 묘지가 주는 조용함 때문인지 해안절벽으로 향하는 길이 차분했습니다.
가족 묘지를 지나 얕은 언덕을 오르니 해안이 보입니다.
햇빛에 비추어진 바닷물결을 보니 이미 차분했던 마음이 더욱 가라앉았습니다.
"내 삶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이곳에 해는 다시 떠올라 바다를 몇 시간이고 데우고 바닷물결은 눈부신 빛이 되어 흔들린다."
해가 뜨고 지는 이 사실은 변치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어찌 됐든 계속 살아가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 왜 나에게 그런 위안을 주었는지.
그리고 왜 그런 당연한 사실을 이 먼곳에 와서야 다시 떠올렸는지 말입니다.
묘지를 따라 걸어온 이곳에서 삶의 용기를 얻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했지만,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음으로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복잡한 생각이 들면 다시 이 글을 읽어봐야겠습니다.
타치마치 해안절벽은 공원처럼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습니다.
하코다테를 여행하다가 조용한 곳에서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면 한 시간 정도만 시간 내서 이곳에 와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해안절벽 구경을 마치고 편의점에 들려 아침 대용 간식을 좀 사서 숙소에 들어왔습니다.
생크림 모치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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