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사람이 죽으면 고인의 친인척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장례를 치릅니다. 그리고 장례 절차는 고인과 유족의 종교나 사후세계관 그리고 그들의 현실에 따라 결정됩니다.
저는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냉담자이기에 카톨릭에서 말하는 사후세계나 장례 절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저와 가족은 장례 업체로부터 빈소, 유골함, 분향소 꽃의 개수, 조문객 응대 음식, 화장터와 납골당 등의 종류와 가격이 적힌 장례 절차 가격표를 받았습니다. 가격표를 받아들었을 때 참 얼떨떨 했지만, 그래도 선택은 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영혼을 통해 우리를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을까?"
"아버지는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어떠하기를 바랄까?"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에게 아버지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길 바랄까?"
"아버지는 본인의 골분을 어떤 모습의 유골함에 담고 싶어할까?"
"납골당은 어떤 분위기와 어느 위치이기를 원할까?"
이 생각에 대한 답을 유추하면서 저희 가족들은 장례 절차를 선택해 나갔습니다.
"아빠는 오랫동안 아팠지만 남들한테 아픈 티 내는 걸 싫어했잖아. 영정사진에는 본인이 건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할거야."
"그동안 아빠 피부가 안좋아서 좋은 옷 못입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입는 옷은 좋은 옷으로 입혀 드리자."
"아빠가 사랑한 할머니의 세례명이 마리아였고, 아빠 일기장에는 성모 마리아님에게 기도하는 글이 많았으니까, 유골함은 성모님의 사진이 담긴 걸로 하자."
"납골당은 무엇보다 우리 집이랑 가까운 곳으로 하자. 그래야 아빠 자주 보러 가지."
"아빠는 꽃을 좋아했으니까, 영정사진 주변에 꽃을 많이 놓자."
물론 장례 절차를 선택할 때 문장처럼 머릿 속이 말끔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격표에 적힌 항목들이 여지껏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기에 이러한 선택이 참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슬픔에 젖어 정신 없는 상황 속에서 돈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수단을 가지고 비현실적인 것들에 가격을 지불해야한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복잡한 기분과 생각이 들었지만 마냥 슬픔에 젖어 있기보다 아버지의 죽음을 아버지를 아는 다른 분들과 같이 애도할 수 있도록 장례 절차를 성심성의껏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일 간의 장례를 치르고 난 이후에도 저에게는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돌아가신 그날 밤 아버지는 병실에서 어디로 가신 거지."
여느 종교의 교리처럼 정형화 된 것은 아니지만, 저는 남겨져 있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을 내렸습니다.
"아버지는 카톨릭 신자였고 착하게 사셨으니까 지금 천국에 계실 거다. 천국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천국에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 했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아버지와 같이 계실거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신선한 야채를 기르고 계실거다. 현생에서는 비록 맺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심은 석류 나무에서는 열매라는 결실을 얻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먼저 천국으로 간 친구들과 만나 산과 들과 계곡에서 뛰놀고 계실거다. 그곳에는 고통이 없을 것이다. 단지 하느님이 천국에 선사한 영원한 안식만이 있을 것이다.
납골당이라는 곳은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만나는 장소이다. 우리가 납골당에 가면 아버지는 그곳에 찾아올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가 조용히 마음 속으로 얘기하면 아버지는 그 말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저는 오늘 아버지를 만나러 가족들과 납골당에 가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날 밤 어디로 가셨는지 그동안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위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아쉬운 점은 그날 밤 이후로 저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모습이나 대답을 더 이상 직접 보고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아버지라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상상은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버지와 제가 긴 희로애락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제게 좋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옆에 계셨고, 제가 화가 나거나 즐거울 때도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제가 서른살이 넘도록 항상 아버지가 옆에 있어주신 게 감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간 옆에서 저를 돌봐주시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더 이상 볼 수 없어도 아버지가 어떤 모습으로 저를 지켜볼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날 밤 이후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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