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여행

홋카이도 가족여행 1일차 - 노보리베츠 료칸

오후식 2025. 2. 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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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일본 홋카이도로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저의 마지막 가족여행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갔던 '강원도 태백 눈꽃 열차'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가족 모두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가족여행을 오랫동안 가지 못했지만 이제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건강이 언제 더 안 좋아질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건강할 때 추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여행 계획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해외 여행하면 몸이 더 안좋아질까봐 두려워하셨고 이번 가족여행을 같이 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100만원을 제 손에 쥐어 주면서 가서 돈 아끼지 말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좋은 거 많이 보고 오라 말하며 웃으셨습니다. 
 

 
 
홋카이도의 신치토세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른 아침 비행기였지만, 어머니는 창밖 구름을 하염없이 쳐다 봤습니다.
 
나: "엄마 눈 좀 붙여. 안 피곤해? 어차피 계속 구름이잖아."
엄마: "안 피곤해. 구름만 봐도 기분 좋다. 안 지루해."
 
어머니는 홋카이도에서 기차를 타서도 한숨도 주무시지 않으셨습니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홋카이도 해변을 계속 바라봤습니다. 이동하면서도 저렇게 좋아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가족 여행을 너무 늦게 왔다고, 지금이라도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홋카이도 레일패스 5일권을 교환하고, 미나미 치토세 역(南千歳、みなみちとせ)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미나미 치토세 역에서 첫번째 행선지인 '노보리베츠(登別、のぼりべつ)'로 가기 위해 호쿠토 열차를 탔습니다.

 

 

 
 
이날은 날씨가 참 맑았습니다. 호쿠토 열차의 보라색 선이 초록색 나뭇잎 그리고 파란 하늘과 잘 어울렸습니다.
 

 
 
미나미 치토세 역에서 노보리베츠 역까지는 위 지도처럼 해변을 옆에 두고 기차가 달립니다.
해변 반대편에는 산이 있어 산을 보며 가는 것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노보리베츠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온천과 지옥계곡(地獄谷、じごくだに)으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노보리베츠역에 도착하면 노보리베츠 지역의 마스코트인 도깨비를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지옥계곡과 관련된 무서운 모습의 도깨비만을 떠올렸는데,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귀엽게 생긴 도깨비, 근육질의 무서운 도깨비, 산 속에 아파트 높이만한 도깨비 등 여러 모습의 도깨비를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지옥 말고도 여러 의미를 갖는 도깨비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지옥계곡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노보리베츠 다테 지다이무라'라는 역사 마을을 보기로 했습니다. '노보리베츠 다테지다이무라'는 에도 시대의 문화를 재현한 역사 마을입니다. 
 
노보리베츠 역에 놓인 키오스크에서 버스 승차권을 구매해서 버스를 타고 역사마을로 향했습니다.
(시골 마을이지만 관광지라 그런지 노보리베츠 역에는 외국어가 가능한 JR 직원이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그분께 물어보시면 됩니다.)
 

 
버스 정류장 앞에 바로 역사마을이 있진 않습니다.
그래도 길이 잘 닦여 있어 역사 마을까지 10분 정도 산책하며 올라갔습니다.
 
 

 
 
역사 마을은 규모가 꽤 컸고 그 안에 구경할 거리도 많았습니다. 
보통 역사 마을에 가면 점토로 만든 사람 모형으로 채워진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나무를 깎아 팽이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활을 쏘는 사람도 있고, 마을을 걷다 보면 직원분들이 에도 시대 놀이도 체험해 보라고 권유도 합니다.  
 

 
 
역사 마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연극이었습니다.
일본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내용을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좋아서 대략적인 흐름은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위 첫번째 사진의 연극은 무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무사들의 액션이 수준급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이 역사 마을을 가게 된다면 연극은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역사 마을을 둘러본 뒤 노보리베츠 역으로 돌아와 셔틀 버스를 타고 숙소에 들어갔습니다.
숙소 이름은 '호텔 이즈미 (ホテル いずみ)' 입니다. 사실 이 숙소는 노보리베츠 온천 마을이 아닌, 바닷가 쪽에 있는 시라오이 온천 마을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천 물도 노보리베츠의 온천과 다르게 유황 성분이 없습니다.
 
노보리베츠 온천 마을이 아닌 시라오이 온천 마을의 숙소를 택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피부병이 있는 아버지가 온천 물을 만졌을 때 유황 성분이 없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바닷가 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태평양을 바라보며 노천탕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숙소 뒤편에는 어르신들이 게이트볼을 즐길 수 있도록 필드가 꾸며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로 태평양 바다가 보입니다. 
 

 
 
숙소에서 기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슴인지 고라니인지 사슴 과 동물이 떼지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저희를 너무 경계해서 미안한 마음에 얼른 숙소 안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오래되어 보이지만, 숙소 외관과 내부 모두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일본어 공부를 좀 하고 가서 프론트 직원 분과 일본어로 대화하려고 했는데, 제 예상과 달리 직원 분이 영어를 상당히 잘하셨습니다. 덕분에 무리 없이 체크인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온천을 하고 나면 항상 로비에 계셨습니다.
아마 숙소에서 로비를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로비에서는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다음 날에는 비가 내려서 나무 지붕으로 비 떨어지는 소리도 듣기가 좋았습니다.
 
 

 
 
로비에 있는 책장에 어린이 도서도 있길래 어머니 옆에서 읽어봤습니다.
내용은 좀 유치하지만, 당시에는 히라가나가 읽히는 재미로 본 거 같습니다. 그림 보는 맛도 있고요.
 
 

 
 
주변에 편의점 같은 것이 없기도 했고, 료칸에 온 김에 숙소에서 차려 준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음,, 맛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바다가 보이는 식탁에 앉아 정성껏 차려진 밥을 먹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와 숙소 뒤편을 다시 걸었습니다. 
사슴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태평양 아래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낯설었습니다.
전등이 많지 않은 이 곳에서 해의 존재감은 참으로 큽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찾아왔고 저희는 다시 온천을 하러 숙소 안으로 갔습니다.
 
 

 
 
저녁 시간에는 온천탕에서 일본 현지인도 많이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투숙하지는 않고 입욕권만 구매해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입욕 일회권이 성인 기준 650엔이니까 괜찮은 가격 같습니다.
 
 

 
 
다음날 일어나 새벽 온천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홋카이도 남부에 위치한 '하코다테 函館'로 가기 위해 다시 호쿠토 열차를 탔습니다.
비가 내렸지만 노보리베츠의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을 운 좋게 같이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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